[전문가 칼럼] 비난하는 우리도, 겪고 있는 그들도. 고립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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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4.10.17
저는 때때로 포털 사이트에 '고립'이라고 검색한 뒤 신문 기사 댓글 창을 하나하나 읽어봅니다. 언제나처럼 고립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 당연하다는 듯 ‘잘못된 대상화’가 이루어지고, 거기에 비난의 화살을 죽일 듯이 쏟아붓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내 인생에는 절대 없을' 생판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서일까요? 정말 무섭게 달려요. 제일 전형적인 댓글은 이런 것들이지요.
"부모 등골 빼먹는 놈들 배때기가 불러서 그렇다. "
"한 일주일만 굶기면 노가다라도 하러 기어 나올 텐데."
"화장실도 아예 못 가게 잠가봐라. 똥오줌 마려운데 안 나오고 버티나."
이 댓글을 쓴 사람들은 마치 본인이 경제 성장기에 나라를 일으킨 역군으로서 나태한 캥거루족 젊은이에게 단호한 일침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굉장히 많은 인식의 오류를 품고 있습니다. 아주 대표적으로 세 가지 정도의 오류를 범하고 있지요. 첫째, 인식의 오류입니다. 고립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방 안에 틀어박힌 상태’인 은둔청년으로 국한해서 오해하고 있지요. 고립과 은둔은 무척 밀접한 상태이지만 분명 각기 구분되어야 하는데도 말이에요. 둘째, 고립된 사람들의 연령대가 대부분 청년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입니다. 셋째, 돈을 끊으면 집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점입니다. 심지어 부모가 잘못 키워서 그렇게 된 거라고 말하는 분들도 참 많아요. 하나하나 오해를 풀어볼까요? 우선 백과사전에서 사회적 고립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부터 살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ion]은 개인과 사회의 접촉이 거의 혹은 완전히 없는 상태이다. 외로움[loneliness]과는 다른데, 외로움은 일시적이며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단절된 것이 자발적이지 않다. 사회적 고립은 연령대마다 증상은 다르지만 어느 연령대에서든 나타날 수 있는 문제이다. 주로 대인관계를 맺을 돈이 없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독거노인에게 나타나지만 청년세대의 빈곤도 늘어남에 따라 점점 세대 간 고립 비율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고립은 사회와의 접촉이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방 밖으로 안 나가는 물리적 은둔상태만을 말하지 않고, 더 넓은 범위의 이야기지요. 회사를 다니고, 알바를 다니는 등 집 밖으로 나가는 사람 중에도 고립 상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친구, 지인, 가족 등 정서적으로 연결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 때, 우리는 이를 사회적 고립이라고 부르지요. 그리고 그 기간이 길어지면 점차 정신적, 신체적 소진과 함께 은둔상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어느 연령대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과 ‘대인관계를 맺을 돈이 없는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즉, 물질의 고갈은 사회적 고립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는 거죠. 돈이 없어지면 집 밖으로 벌러 나오는 게 아니라, 더 고립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외로움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거예요. 외로움은 비자발적이지만, 고립은 자발적이라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고요? 사람이 다가와도 피하는 건 이상하지 않냐고요? 그런 느낌으로 이해한다면 조금 의아할 수 있겠지만, '동굴로 들어가는 시기'라는 표현으로 바꾸어서 생각해 보세요.
사진_pexels
여러분에게 혹은 주변 사람에게 한 번쯤은 그런 시기가 있지 않았나요? 물론 저에게도 있었고요. 그 동굴 행을 선택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거나 내가 고립을 즐기는 사회성 없는 사람이라서였나요?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별, 이혼, 직장 내 괴롭힘, 따돌림, 가스라이팅 등등 감당하기 힘든 인생의 쓰나미 앞에서 어떻게든 나 자신을 보호해 보려는 최후의 선택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방법을 써도, 어떻게 부딪혀봐도 답이 나오지 않으면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아끼고 동면하듯 웅크린 채로 ‘이 겨울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그렇기에 누구도 동굴로 향하면서 '여기가 좋아, 난 영원히 여기에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생의 봄철이 오면서 자연히 다시 벗어나기를 희망하지요. 다만 그 인생의 혹한기가 생각지 못하게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일시적인 동면이 아니라 만성적인 고립으로 서서히, 아주 천천히 흘러가게 되지요.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채로요. 그런 사람들에게 지금껏 우리 사회는 고립을 개인의 나태나 무기력으로 바라보며 비판해 오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한 번쯤 생각 해볼 문제입니다, 우리에겐 정말로 고립을 겪었던 순간이 없었나요? 그들을 비판하거나 질책할 권리가, 우리에겐 있나요?
※ 이 사업은 경기도 청년이 제안한 사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