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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고립,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생의 통과의례
- 조회수 257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4.11.21
상담가라는 제 직업은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동굴 속에 머물고 있는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은 채 홀로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쓰나미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곁에서 같이 엎드려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지요. 하지만 그 생의 쓰나미가 오는 원인이나, 그것이 지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상담가이면서 또한 작가이기도 한 저에게 의미 있는 제안을 한 곳이 있었어요. 바로 청년재단이었는데요. 올 한 해 청년재단과 함께 ‘리커넥트’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고립 당사자, 그리고 고립 당사자의 가족 100명을 인터뷰하고 그 대화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고립이란 정확히 무엇인지, 고립 당사자나 주변인은 어떻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를 책으로 출판해내는 작업이었지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의 쓰나미가 왔다가 지나가는 기간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더라고요.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년까지 고립을 겪은 사람들. 이유는 너무도 다양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장기 미취업 청년도 있었지만, 남편의 해외 주재원 파견으로 인해 관계망이 단절된 기혼 여성 청년 같은 케이스도 있었어요.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이어도 얼마든지 고립을 겪을 수 있었고, 성격이 명랑한 사람에게도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는 게 고립이었습니다. 가스라이팅, 직장 내 괴롭힘, 가족의 폭언 폭력, 이혼, 경력단절 등 숱하게 많은 사연들을 접하던 과정에서, 저에게 뜻밖의 인사이트를 나누어 준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동네 공원에서 만난 80대 할아버지였어요. 우연히 반려견이 너무 귀여워 쓰다듬으며 이름을 묻다 대화를 시작하게 된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삶에서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는, 요즘 말로 ‘인싸’였어요. 학창 시절, 직업이었던 중학교 교사 시절, 은퇴 후 60~70대까지도 주변에 늘 사람이 북적였지요. 하지만 사모님을 비롯한 모든 주변인을 사별로 떠나보낸 지금, 할아버지는 ‘혼자’인 삶을 처음 겪어본다고 했어요. 당신의 자녀보다도 훨씬 어린 저에게도 반말하지 않으시는 할아버지는 아주 덤덤하고도 정제된 언어로 이렇게 말했어요.
사진_pexels
“팔십 넘어서 처음으로 ‘고립무원’이라는 단어가 사무치게 와닿더라, 이 말이지요. 내가 한문 선생도 한 8년 했는데, 항시 ‘고[孤] 자, 립[立] 자, 무[無] 자, 원[援] 자’ 글자 쓰는 법만 가르쳤지. 이것이 이렇게 관념적인 단어가 아닌 내 삶으로 와닿는 것은 또 다른 문제더라고요. 아, 내가 참으로 겉껍데기만 늙은 소년으로 많은 이들의 돌봄 속에서 살았구나 싶고요. 청년도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을 때 혼자도 지내보고, 둘로도 지내보고, 또 여럿이서도 지내보면 좋지 않을까.”
할아버지는 스스로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 자기를 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노년기에 혼자된 스스로가 퍽 낯설다고 말했어요. 제 눈에는 아주 교양 있고 학식 있어 보이는 멋진 어르신이었음에도 당신 스스로를 철이 덜 든 사람이라고 말하셨지요. 인생에서는 언젠가 한 번은 누구나 혼자가 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살아서, 그래서 외로움에 대해 준비하지 못한 채 고립을 맞이했다면서요. 100여 명의 사례자와 그리고 1명의 이웃 할아버지, 그 101명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고립은 누구나의 삶에서 한 번쯤 겪어내야 하는 생의 통과의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청년기이고, 누군가에겐 중년, 누군가에겐 노년기인 것이지요. 생각 해보세요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이런 순간이 옵니다. 아무런 개인적 문제가 없는 사람조차도 ‘노년’이라는 이유로, 사별에 의해서도 겪게 되는걸요.
이렇게 고립은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 역량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낳은 수 환경적 요인들에 의한 파편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러분께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고립을 겪는 당사자라면 부디 자책을 멈추어주세요. 당신 주변에 고립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평가나 조언을 멈추어주세요. 대신 서로에게 안녕을 물어주세요. 어떻게 안녕을 물어야 하느냐고 묻는 분들께 저는 딱 한마디를 건넵니다. ‘생즉카’하시라고요. 생각나는 즉시 카톡 하기의 줄임말이에요. 누군가가 떠오를 때 우리는 어느 날부터 안부를 묻는 대신 그 사람의 SNS를 들어가서 훑어보거나, 내 일상이 바쁘다는 이유로 금세 머리에서 그를 잊곤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머리에 스치듯 떠오를 때 그 즉시 카톡 하나를 보내 보세요. 잘 지내는지, 안녕한지. 그냥 ‘생각이 나서’ 연락했음을 전해주세요. 이유 없이, 목적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한 개인이 잘 지내고 있는지 물어주는 마음, 거기에서부터 고립 당사자의 회복은 일어납니다. 그리고 개인의 연결과 연대가 익숙해지는 문화가 만들어질수록 우리의 ‘사회적 안녕’도 단단해져 갈 겁니다.
※ 이 사업은 경기도 청년이 제안한 사업입니다.